2023년이 새로 왔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새해를 시작하는게 나에게 의미가 될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이토록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모하고 존경한 적은 없었다. 어린 나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다름 없는 위인이라고 떠들고 다닐 정도로 영웅으로 생각하고 지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난 적도 없고 TV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인데 마치 버튼을 누른듯 이름만 떠올려도 나는 감정적으로 흥분되고 동요가 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 인간미는 너무 섹시해서 중독적이다. 지금은 어디가서 무엇이 되셨을까.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 대접받는 진짜 민주주의 세상을 원하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지만 현실 국민들 스스로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천천히라도 결국 발전할 수 밖에 없다. 현실이 어렵다고 포기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나도 노무현처럼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보기 위해 절대로 포기안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고 오늘은 노무현 나오는 영화 한 편 보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2017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인간 노무현이 인생의 바닥에서부터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의 험난하고 기적적이었던 과정과 그와 인연이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증언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아래에서는 좀 더 자세히 이 영화를 본 나의 후기를 전해드리려고 한다.
바보라 불린 사나이
"노무현입니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2002년 대선 때의 그 승리의 기적을 감동적으로 더듬고 있다. 16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노무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측근들의 다양한 인터뷰와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있는데, 김경수는 없다. 노무현의 그림자였던 김경수는 비서로서 인터뷰 하나 정도는 나와야 합당한데,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감독 말로는 노무현 이름만 나오면 서럽게 펑펑 울어서 담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 서럽게 펑펑 울었는지 알고 싶다.
노무현이라는 인간이 걸어온 길은 감동을 준다. 약자들의 편에 섰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명도 바보이다.
고졸 출신이었지만 노무현은 당시 엄청나게 어려웠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부산을 거점으로 변호사 활동을 했다. 힘이 약한 노동자들을 변호해주는 인권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한국 정치계의 거물 김영삼에게도 노무현의 이름은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김영삼의 권유를 받고 노무현은 정치계에 입문했고 부산의 동구에서 1988년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에 당선된다.
정치 신인이었음에도 노무현은 약자의 시각에서 재벌들과 전직 대통령들에게 날카롭게 질의하였다. 5공화국 청문회에서 특권층 증인들을 사정 없이 다루었던 그의 당당하고 불 같은 열변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대리만족을 주었고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라는 별명을 갖게되었다.
이후 자신을 후원해주었던 김영삼은 1990년에 구태적인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자신의 대통령직을 위한 안전보험을 들었는데, 노무현 입장에서 그런 합당은 야합에 불과한 부정의였다. 그래서 김영삼과 결별했고, 노무현은 민주당 노선으로 바꾸게 된다.
호기롭게 김영삼을 뿌리치고 나왔지만 이 때부터 노무현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노무현은 한국의 지역주의를 없애고 동서화합을 이루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지만 현실 민심은 차가웠다.
노무현은 민주당 소속이었으면서도 민주당을 싫어하는 부산에서 출마를 강행했다. 그런 컨셉은 누가봐도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당연하게도, 1992년 김영삼의 텃밭 부산에 출마했다가 노무현은 낙선했다. 재선에 출마한 것이었는데 김영삼 간판을 떼고 호남당으로 인식되는 민주당으로 선거에 나온 것이니까, 당연히 부산 시민들이 노무현을 외면했다.
이 후에도 노무현은 부산에서 1995년 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1996년의 총선에서도 낙선했다. 1998년에는 종로의 보궐 선거에서 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또 바보 병이 도져서 2000년에 동서화합을 외치며 부산에서 다시 한 번 출마했다가 역시나 또 낙선했다. 지지 기반 없는 부산에서만 4번 출마했다가 4번 다 패배한 노무현은 이 때부터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의에 자신을 던진 사람이 있어서 자랑스럽다.
진짜 민주주의자였던 사나이
지역주의 없애고 국민통합으로 한국을 하나되게 하자는 노무현의 꿈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대선이 있었던 2002년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이라는 국민 참여형 대선 후보 선출 이벤트를 하게된다. 인기 없던 노무현에게는 기회였다.
전국을 돌며 펼쳐진 그의 언변과 재치에는 변호사 출신으로서의 명쾌한 논리는 물론이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설득력과 공감으로 가득했다. 노무현의 진정성과 가치는 마침내 발견되기 시작했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노무현이 '진짜 민주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국민이 주인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 수준을 높여야 하고 하나로 튼튼하게 단결이 되어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상태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민주주의자로서 국민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어느 계층을 만나더라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국민들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꿈 꾼 나라의 모습은 그런 나라였을 것이다.
지역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기회주의가 득실대는 밀실 보스정치가 사라지고 모든 국민이 특권 계층 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노무현은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며 최선을 다했다.
국민들은 2002년에 마침내 노무현의 진심을 알아주었고 돼지저금통을 쪼개서 후원금을 보태주었다. 경상도 사람 노무현을 전라도에서도 열렬히 지지했다. 그들은 노무현이 진짜 민주주의자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최초로 '진짜' 민주주의자가 서민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
노무현은 보통 사람의 시대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강자가 아무렇지않게 약자를 짓밟고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보며 기회주의와 아첨으로 처신할 수 밖에 없는 불공평한 시스템을 끝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검사 권력에 문제 제기, 언론 재벌에 대한 경계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특권 계층이 없이 모든 국민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진 보통 사람들의 시대가 노무현이 찾아헤맸던 노무현의 시대였던 것 같다.
영화의 증언에서도 노무현은 자신이 힘든건 견디지만 다른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삶에 처하면 눈물을 보이고 세상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 분노가 노무현의 시대를 구상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노무현의 시대는 시민들이 스스로 깨어나서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시대다.
노무현이 하늘로 떠난지 올해로 14년이 된다. 문득 노무현의 시대는 얼마나 진척되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시민들은 깨어났을까? 조직되어서 하나로 단결하고 있나? 주권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가? 우리 안의 지역주의는? 특권 의식은? 기회주의는? 보스주의는? 대답하기 쉽지 않다. 변명이 궁색해서 얼굴이 화끈해진다.
역사는 노무현 덕분에 조선 왕조 500년 이후 '후기 조선'의 권력 체제가 균열될 수 있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대통령과 재벌에게 악플 달 수 있는 시대는 노무현이 열었다. 후대들은 국민들이 깨어나서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평등한 나라가 노무현 덕분에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바보 노무현과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기억하며 나 또한 깨어나서 주체적으로 한 해를 열심히 살아가리라고 스스로 강하게 다짐한다. 지구인 여러분 우리 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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