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같이 사는 두 남녀는 정말로, 진짜로, 확실하게 안정적인 관계인가? 서로 다른 꿈을 꾸지는 않는가?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영화는 제기한다.
그래서 누가 봐도 모범적인 가정과 본능에 이끌려 사는 파괴적 가정을 대비시키면서 감독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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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밍"이라는 이 영화는 2005년도에 나온 프랑스 영화이다. 감독의 난해한 연출과 배우들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대단한 긴장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샬롯 램플링의 연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나이가 많지만 영화를 휘어잡는 에너지가 대단하고 여전히 아름답다.
전형적인 프랑스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한 부부가 있다. 남편 '알랭'은 엔지니어로 일하며 모범적이고 착한 가장이다. 아내 '베네딕트' 또한 남편 만을 바라보는 착하고 순수한 여자다. 둘 사이는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자신의 사업이 순조롭게 잘 되고 있어서 사장에게 감사인사도 할 겸 '알랭'은 사장 부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사장 '리처드'와 그의 부인 '알리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의 집에서 예의 따위 아랑곳 않고 부부 싸움을 거칠게 해대기 시작한다.
'리처드'가 자신을 두고 창녀와 놀아났다면서 '알리스'는 공개적으로 남편에게 면박을 주고, 급기야 자기 화에 못이겨서 와인을 남편 얼굴에 쏟아버린다. 그걸로도 분이 안풀려서 '알리스'는 '베네딕트'에게 질투와 거만이 섞인 욕을 하고 '알랭' 부부의 집에서 떠나간다.
'알리스' 역할을 맡은 '샬롯 램플링'은 어딘가 사악해 보이면서도 사랑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듯 처연한 여인의 모습을 카리스마 있게 연기했다. 극 중 초반은 '알리스'의 기행과 슬픔의 표출에 의해 이끌려간다.
영화의 제목인 레밍은 단지 스칸디나비아에 사는 자살하는 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알리스'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불가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북쪽에 서식한다는 레밍 역시 놀랍게도 프랑스의 알랭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쥐와 '알리스' 모두 영화 속 불행과 충격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쓰이고 있다.
초반에는 남편에게서 버림 받은 '알리스'의 광기어린 분노가 영화를 채운다. '알리스'가 자살한 이후에는 마치 '알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본 후 죽은 그녀가 '베네딕트'에게 빙의라도 된 듯이, 욕망에 집착하는 '베네딕트'가 영화의 후반부를 이끌어간다.
공통적인 영화의 주제 의식은 영원한게 있느냐는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질투에 눈이 먼 '알리스'가 감독을 대신해 '알랭'을 시험한다. 나를 마음껏 가져도 좋다고. 모범적인 남편 '알랭'은 거절은 했지만 살짝 마음이 움직였고 '알리스'는 단지 그가 흔들렸던 장면을 목격한 것 만으로도 만족을 얻었다. 누구나 욕망에 이성을 잃는다.
남편만 바라볼 줄 알았던 '베네딕트'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안정적인 결혼 생활에 만족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숨겨둔 욕망이 있었고 남편의 사장과 밀회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을 채웠다.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안정은 깨질 수 있다.
한 번쯤 해봄직한 질문을 감독이 대신 풀어본 영화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채울 정도의 수작은 아니다. 프랑스인들 특유의 난해함과 스릴감이 있고 그런대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이 세상에서 모두가 약간은 욕망을 누르고 살아간다는 점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고 관심사를 살피는 태도가 건강한 관계 유지에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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